인간은 누구나 성에 대해서만은 도착증세가 있다. 그 기준이 모호하고 이 때문에 범죄행위로 연결되거나 자신의 성파트너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면 성도착증이라고 할 수 없다. 고민해 성기능을 위축시킬 필요는 없다.
‘적절치 못한 성행위’로 20세기 말을 후끈 달궜던 오럴섹스도 두 사람이 원하는 합의 행위면 결코 성도착이 아니다. 지나치게 엄격한 성교육을 받은 사람은 부부생활도 정상위만 고집,진정한 환희를 계발 못하고 의무방어전 치르듯한다.
이런 부부일수록 애 낳아 다 키우고나면 부부간 다정함이 두드러지지 못해 썰렁한 분위기로 살아간다. 20여년 전에 본 남의 정사장면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아 자신의 부부관계가 재미없다고 호소하는 남자도 있다. 이 또한 성도착이라 할 수 없다.
아무리 점잔빼느라 근엄한 척하는 선비도 남의 정사행위를 보는 것(voyeurism)은 재미있다. 요는 이 장면을 보기 위해 그런 행위가 잘 발생하는 공원이나 강변 등을 어슬렁거리고,망원경으로 이웃집 침실을 훔쳐보고 흥분해 성배우자를 멀리하는 게 병인 것이다. 이런 현상에서 직접 나타나는 피해가 비교심리다.
엿보기 상대방의 그것이 엄청 크게 보인다든지 금방 끝나는 자신의 행위보다 오래 끄는 행위를 보면 자신과 비교해 콤플렉스를 느끼고 성불만이 쌓인다. 어쩌다 한두번 또는 우연히 본 남의 행위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고 해 병으로 속단할 필요는 없다.
남의 떡이 커보이면 자기 떡을 크게 하고 행위시간도 오래 끄는 훈련을 하는 것이 자신의 도덕감을 세척시키는 방법이다. 남의 행위를 과도하게 훔쳐봐 자신의 성파트너에게 안하던 행위를 한다든지 자신과 비교해 보는 심리는 정신과에 가기 전 자신의 신체를 고치는 것이 치료의 지름길이며 자신이 성도착증이 아닐까 엉뚱한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이무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