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8월 5일 소련의 타스 통신이 전세계에 마릴린 먼로의 부고를 최초로 보도했다. 먼로는 헐리우드의 비버리 힐스에 있는 자신의 방에서 여느 때처럼 샤넬 NO. 5의 향수를 뿌린 전라의 모습으로 킹 사이즈 침대에서 횡사했다. 수면제의 다량 복용으로 인한 자살이었다. 눈물을 감추고 유서도 쓰지 않았다.
마릴린 먼로는 1926년 로스엔젤레스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노마 진 베이커라고 했다. 1949년에 헐리우드에 들어간 그녀는 선천적인 미모와 육체미를 타고나지 않았더라면 창녀로 타락해 있어도 이상할 것이 없었던 환경 속에서 자랐다. 그녀는 사생아로 어머니도 미쳐서 죽고 없는 고아였다. 8세 때 강간을 당하고, 16세에 젊은 하사관과 결혼했으나 2년 만에 버림받았다.
그녀는 생활을 위해 영화의 엑스트라나 누드 모델이 되기도 하고 최후로는 콜걸과 같이 생활하기도 했다. 그녀가 영화에 출현하게 된 계기는 전시중이던 G .I용 누드 캘린더의 인기가 좋았기 때문이었다.
헐리우드의 프로듀서는 이 인기 캘린더의 누드 모델을 찾아 내서 스타를 만들기 위한 도박을 했다. 그녀를 헐리우드적인 요부로 만들기 위해 전후 6회에 걸쳐 성형수술을 시켜 ‘여배우 마릴린 먼로’가 만들어졌다.
먼로는 14년 동안에 걸친 영화 출연으로 720억 원이라는 돈을 그 미모와 육체로 벌어들였다. 그녀의 육체는 기업이며 산업이었다. 그녀의 먼로 워크(엉덩이 흔들며 걷기), 가슴이 벌어진 의상, 섹시한 목소리 등의 교태는 헐리우드의 의사 에로티시즘에서 만들어진 일종의 가면이었다. 그녀는 항상 성적 매혹을 뿌리고 호색적인 여자로서 생활을 연기하며 살아야만 했다.
그 생활에는 내면적인 자유조차 말살되었다. 헐리우드의 상품으로서만 존재가 허용되었던 것이다. 그녀의 죽음은 그 모든 생활에 대한 거절을 의미했다. 그녀는 상업주의의 독살에 맞아서 죽은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