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세월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나도 한때는 누구도 부럽지 않은 힘이 있었는데…’ 하면서 과거를 돌이켜보며 한숨을 쉬는 남성들은 그 세월의 무자비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어쩌다 거울 앞에 서 보면 꾸부정한 어깨, 저승꽃이 핀 얼굴이 자신을 마주보고 있다면 누구나 한심한 생각이 들겠지만, 그런 주에서도 내심 남자 구실을 못하는 것이 제일 서럽다.
더 서글픈 건 그나마 자신이 남자라는 사실을 증명할 기회도 없다는 것이다. 인생은 60부터라며 골프채를 매고 다니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간혹 젊은 여자와 잠자리를 했다는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늘어 놓는 정력 좋은 친구도 있지만, 이도 저도 할수 없는 노년은 우울하기만 하다. 게다가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 버리면 자잘한 일상사에 불편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누구 하나 말벗이 되어줄 사람이 없다는 것도 외로움을 더한다. 효자 노릇을 하려는 자식들은 아버지를 생각해서 재혼을 권하지만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자기보다 나이 많은 할머니를 들이기는 싫고, 마음 같아선 그래도 좀 젊은 여성을 반려자로 삼고 싶지만 그것은 자기 쪽에서 오히려 기를 펴지 못하게 될까봐 부담스럽다. 이래저래 한숨만 느는 것이다. 올해 66세된 J씨도 이런 딜레마에 빠져 있는 케이스다.
6년 전 환갑도 못 채우고 아내가 먼저 간 것을 빼면 J씨의 일생은 큰 풍파가 없었던 평탄한 인생이었다. 60년대 초 시장의 좌판에서부터 시작한 사업이 매년 불어나, 2남 1녀의 아이들을 키우고 결혼시켜 살림을 내 주고도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정도의 재산도 있다.
그렇지만 새벽바다 적막강산인 것은 아무도 해결해 주지 않는 문제였다. 일어나라고 이불을 제치는 마누라도 없고, 일어나 봤자 딱히 할말한 일도 없었다. 아침을 먹고 나면 아들 며느리와 손자들은 다 제갈길로 가버리고 달랑 혼자 남는다. 친한 친구는 거의 다 세상을 떠났고, 사업상 만난 지인들은 돈자랑이나 늘어놓으며 다방 아가씨들과 잡담하는 것도 J씨 눈엔 거슬렸다.
그런데 그러던 J씨에게 최근에 아주 흥이 나는 일이 생겼다. 마음에 드는 노부인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 노부인은 며느리 이모의 친구로, 홀로 된 지 10년이 넘었는데 아이들 다 키워놓고 보니 남은 인생이 외롭고 쓸쓸하여 남은 생을 같이할 적당한 영감님을 찾는다는 것이었다.
이무연
